시작은 이러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케이크 만든 뒤의 생크림이 조금 남아있어.
이대로 두면 또 유통기한을 넘겨 버리게 되겠지.
내가 올해 버린 생크림의 양은 얼마나 될까?
내가 지구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지?
아..안돼..이대론 안돼. 이 생크림 어떻게해서든지 처리하자.
그래. 아직 저녁 전이잖아. 마침 새우도 있고..크림 스파게티 해먹자.
그래서 착착착 스파게티를 만들었지.
하지만 미묘하게 생크림이 모자라.
이건 크림스파게티도 아니고 오일스파게티도 아니고하는 비주얼 탄생.
흠..이걸 어쩐다..
그래..와인이 있지. 오늘 기분도 별로니까 와인을 한 병 따자.
분명 와인과 함께 먹으면 더 맛있을거야.
라는 것이 이 날의 시작.
그래..처음 시작은 지구에게 나쁜 짓을 하기 싫어
생크림 처리반으로 스파게티를 만든 것이 도화선.
그런데 이거 와인과 함께 먹으니 미묘하게 모자른 크림스파게티도
너무나도 맛있게 느껴진거예요.
그제서야 와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되었고..
어느새 스파게티가 서브메뉴로..-_-..
이 녀석이 그 문제적 와인.
언젠가 고시생이 집에 놀러올때 선물로 사온 것.
당시 이 와인을 구입하기 위해 꽤 여러군데 돌아다녔다는
녀석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와인을 별로 좋아하지않는 난
미안하게도 와인보다는 녀석의 노력이 더 고마웠던 것이 사실.
뭐..달리 말하면 와인엔 별로 관심없었다는 얘기..-_-..
그렇게 우리집에 있던 와인들과 뒤섞여 한참을 보낸 이 녀석..
따보니 의외로 정말 맛있잖아!
프라이빗 빈 쇼비뇽 블랑(PRIVATE BIN SAUVIGNON BLANC)
2007년, 뉴질랜드.
첫맛은 꽤 달콤하고 뒷 맛은 약간 씁쓸..
아..맛있다.
라고 느낀 것이 사건의 발화점.
그 후 정군이 퇴근하고 어쩐지 짜장우유가 놀러오고..
오늘은 와인을 한 번 마셔보자..으쌰으쌰 셋이 의기투합.
프라이빗 빈 쇼비뇽 블랑을 너무나도 맛있게 마신 우린
집에 있는 다른 와인에도 눈을 돌렸지.
화이트 와인으로 시작했으니 오늘은 화이트 와인으로 끝을 보자..
마침 내 눈에 들어온 건 몇해전 독일 갔을 때 구입해온 이 화이트 와인.
정확한 이름도 몰라..
(라는 것은 응..나 정말 라벨도 볼 줄 모를 정도의 초보.)
당시 이걸 살때는 단순히 병이 예뻐서.
호텔로 들어가기 전 레스토랑에서 마셨던 와인이 너무나 맛있어서..
근처 편의점에 진열된 와인 중 아무거나 골라온 것.
가격도 굉장히 쌌어. 당시 약 5천원 정도 줬던 걸로 기억.
편의점에서 구입한 와인이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으랴..하고
그간 딸 생각도 안하고 그저 장식용으로만 뒀던 이 와인.
그런데..
우왓!!!!우왓!!!!
다시 독일가서 사오고 싶을 정도로 맛있어!!! >.<
쓴 맛이 별로 없고 달달..그것도 부담스럽지않을 정도로 달달.
이거 우리나라 수입 됐을까?..
수입이 됐다면 재구매율 100%..
으아..한 병 더 사올걸.
라고 느낀 것은 이미 이성의 끈을 놔버린 상태.
와인 2병으로 기분이 좋아진 우린
으하하하. 한 병 더 딸까?..해서 마지막으로 딴 것이 이 녀석.
이것도 언젠가 고시생이 선물해준 와인.
(그러고보니 고시생이 좋은 와인 많이 줬구나..아..새삼 또 고마워라.)
빈 65 샤도네(Bin 65 Chardonnay)
2005년, 호주.
여지껏 약간 달달한 와인을 마셨다면 조금은 쓴 맛이 더 도는 와인으로 마무리.
음...와인 초보인 난 약간 달달한 쪽이 더 맛있구나..
라는 것이 이 와인을 마셔본 소감이랄까.
게다가 이 직전에 마신 독일와인이 너무나 맛있었기에
약간 평가절하됐는지도..
어쨌든..그리하여 이날 저녁 우리 셋이 마신 와인은 이렇게 세병.
게다가 이 날 안주는 무려 전어회무침.
그런데 또 와인과 전어가 미묘하게 마리아주가 맞는거예요. 하아..신기해.
그렇게해서 이 날을 계기로 와인에 대해 다시 눈을 떴다고나할까..
그래서 지금도 집에 있는 와인을 보며 쩝쩝 입맛을 다시는 우리 부부를 위해
어젠 집에서 치즈도 만들었어.
건살구가 콕콕 박힌 담백한 치즈.
집에서 치즈를 만드니 양도 많고 담백하고 좋구나..으핫.
곧 레시피도 정리..
사실..와인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일년에 한 두번 정도.
마시면 맛있는 술인데 왜 와인 따는걸 꺼려할까..스스로에게 물어보니
어쩌면 와인이라는 술이 갖고있는 도도함이 싫은지도.
이건 "신의 물방울"의 영향일지도 몰라.
와인을 마시면 뒷배경으로 러시아 무희가 춤춰야할것같고..
라즈베리향이니 오크향이니 세심한 맛도 다 느껴야할것같고..
그런 것이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또 다른 술보다 우월하다는 약간의 도도함이 싫었는지도.
근데 이렇게 우루루 따서 으하하하 분위기에서 콸콸콸 따라마셔도
맛있는 술이었구나. 와인은.
게다가 저 병마다 품고 있는 향과 맛이 다르다는 것도
이 술이 지니고 있는 또 다른 매력이겠지.
이제 스스로 와인에게 갖고있는 자격지심을 내려놓고
이 맛있는 술을 즐겁게 즐겨봐야지.
자..그런 의미에서
치즈도 만들었으니 오늘 저녁 와인 한 병 더 따볼까나.으힛.
정군 오늘 저녁 와인 한 잔 어떠신가요? ^-^




